예수원칼럼

친절을 힘씁시다


성경은 관계를 소중히 여깁니다. 하나님과 맺은 관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만나게된 관계, 교회 안에서 공동체로 만나게된 관계, 또는 예수님의 제자된 신분으로 사회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게되는 관계 등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관계는 믿음의 증거를 확인하게 해 주는 현장입니다. 신자들에게 관계는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내는 방식을 통해서 유지되고 발전되고 성숙해져 갑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타적인 완전한 희생과 헌신이기에 믿음없이 닮아낸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닮아내는 사랑으로 이웃과 좋은 관계를 나타낸다면 믿음의 증거가되는 겁니다.


성경은 관계를 실천함에 있어서 ‘친절’을 강조합니다. ‘친절’은 ‘온유함’과 상호 교환됩니다. 마태복음 팔복에서도, 성령의 열매에서도, 그리고 사랑의 열매에서도 ‘친절’은 강조되고 있습니다. ‘친절’은 비지니스 현장만 아니라, 모든 관계속에서 성실히 나타내고 개발되어가야 할 ‘경건 훈련의 대상’입니다. 


부부간에 편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말하고, 무례히 행동하면서 친절을 상실한 경우라면 목숨걸고? 회복해야할 신자의 과제입니다. 교회나 목장 등의 공동체 활동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정을 품고 차갑게 대하거나 무뚝뚝하거나, 의도적으로 따돌리며 소외감을 주는 악함 역시도 목숨 걸고 변화시켜야할 신자의 과제입니다. 마텟에서 접하게되는 직원분들이나 식당에서 서빙하시는 분들에게 손님이라고 무례하게 권리 행사하시는 태도 역시도 신자라면 오늘 당장 바꾸셔야 할 악행입니다. 직장에서 윗사람이라고 아랫사람을 함부로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라고 차갑게 대하거나 직장 분위기를 힘들게 하는 자가 신자라면 내일부터 그런 모습 나타나지 않도록 반드시 고치셔야 합니다. 불친절함을 정당화하는 변명은 추합니다. 더구나 주변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언행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책임진다는 건 감정을 이기고, 거칠고 차가운 말과 표정등을 다스릴 줄 아는 예의를 갖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목이 쉬도록 외치는 ‘친절하라’입니다. 


최근 우리 성도님 중의 한 분이 직장에서 사장님때문에 갈등이 너무 크셔서 괴로워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장님은 타교회 신자이신데 직장안에서 그 분의 ‘신경질적 감정 이탈 언.행’이 주는 폭력이 갈수록 더하다는 겁니다. 오랜 세월 몸담아온 회사를 떠나야할 정도로 괴로움을 준 거죠. 그 분이 신자라는 말에 듣는 제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한편, 최근 저의 가정사로 인해서 만나게된 전문인이 계십니다. 처음엔 신자인줄 몰랐습니다. 너무 친절하시고 예의 있으셔서 “신자이셨으면 좋겠다”라는 목마른 갈망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근 교회의 신실한 신자분이시라해서 참 반가웠습니다. 자동적으로 “이 정도의 친절함을 갖춘 분은 우리 교회에서 누구를 비교해 볼 수 있을까?”라는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교회에 대한 존경심마저 들더라고요. 물론 공동체 안에서는 부족한데 직업 특성상 일터에서 탁월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교회에서는 탁월한 듯 보이나, 교회 밖에서는 엉망인 분들도 계십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사랑은 신자의 평생 덕목입니다. 사랑이 행동으로 나타나면 반드시 친절한 언어와 행실이 나타나야 합니다. 스스로 인식못할 정도로 습관이되어 버린 불 친절을 제거합시다. 친절로 새 옷을 입고 주변의 유익이되도록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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